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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시대]

헬라(희랍) 제국의 역사

글쓴이 : 포토바이블 날짜 : 2014-12-14 (일) 10:53 조회 : 2359


[마케도니아 지역의 첫성 빌립보 지역]

1.헬라의 근본(기원전300-2000년)
 헬리족이라 칭함을 받는 인도 유럽족이 헬라 본토와 에게 바다로 몰려오기 이전에 에게 바다 여러 섬에는 셈족이 아닌 사람이 기원전3000년경부터 소아시아와 애굽의 문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지도자격인 섬이 그레데였다.
 그레데는 아프리카와 에게바다의 여러섬의 중개 역할지로 일찍이 애굽문화를 받아들여 기원전1600-1400년경에는 소위 웅대기라 부르는 예술문화를 이룩하였다. 따라서 헬라 본토에도 소아시아로부터 들어간 셈족이 아닌 사람들이 미케네를 중심으로 살았는데 기원전1500년경부터 그레데와 애굽 문명을 받았다.

2.이동(기원전2000-1000년)
 기원전2000년경의 헬라족은 다뉴브강 하류를 거쳐 해안지대로 남하했는데 이들 중 첫 번째로 남쪽 헬라에 자리잡은 무리를 아케안(Achaeans)이라 하고 그 뒤를 EK라 기원전1500년경에 도리아인이라 불리우는 또다른 무리가 왔는데 이들은 기원전 1400년경에 배를 타고 내려와 그레데와 다른 근방 섬을 정복하였다. 그뒤 또 기원전1300-1000년에 이느는 동안 헬라족은 남은 여러섬과 소아시아의 해안지대를 점령하고 기원전 12세기경에는 소아시아 트로이성을 파멸시켰다. 이리하여 기원전2000-1000년경에는 헬라 반도 뿐만 아니라 에게 해안 전역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중 바다 사람의 한 무리는 이들에게 쫓겨 팔레스타인의 블레셋을 멸망시키고 애굽 제20왕조를 괴롭게 하는 바다 사람이 중동 일대를 크게 흔들었다.

3.점령(기원전1000-500년)
 짐승과 고기를 잡던 생활에서 농업으로 바뀌어짐에 따라 토지 소유권이 생기고 이로인하여 작은 촌락들이 생겼다.(기원전1000년경) 이때로부터 기원전750년에는 왕정시대로 동양의 고대왕과는 다르게 국민회의 형식으로 정치를 하다가 그후 재력을 가진 귀족이 일어나 기원전750-600년 동안 귀족정치가 이루어졌다. 이때 유명한 올림피아 제전이(기원전776년) 귀족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이때 비로소 자기들을 헬라사람이라 부르며 헬렌의 후손이라 믿었다.
 기원전600-500년간은 상업의 발달로 부가 늘어나자 상공계급의 지지를 받은 귀족은 쉽게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는데 이때를 패주정치 시대라 한다. 그러나 이때의 패주는 국민대중의 지지로만 설 수 있어 민주 정치의 선봉이 되었다.

4.쇠약(기원전500-359년)
 소아시아 서쪽에 있는 헬라인은 기원전500년경부터 그곳에 살던 헷사람과 초기 아나토리아인으로부터 압박을 받았고 한편 몇 개 도시를 제외한 이오니아인은 그곳에 자리잡고 있던 루디아왕에게 정복되었다. 루디아는 바사왕 고레스에게 멸망되어 이오니아인은 바사의 압력을 느끼면서 바사를 대항하다가 기원전490년에 마라톤 전투에서 헬라의 군사는 바사를 쳐부수고 승리했다. 이때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 병사가 마라톤에서 스파르타까지 400리나 되는 거리를 뛰어 전한 것을 기념하여 마라톤이 생겼다.
 이후에도 바사왕 쎌서스(아하수에로) 군대를 기원전480년 살라미스에서 섬멸하고 베니게 해군도 섬멸했다 그러나 그후 아덴과 스파르타 사이에 동족상잔이 일어나 세차례의 페로폰네소스 싸움(기원전459-446,431-421,421-404년)으로 헬라의 모든 것을 소모시킨 후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스파르타도 기원전395년 아덴이 테베스, 고린도와 연맹을 맺고 한 고린도 싸움(기원전395-387년)에서 패했다. 그러나 패권은 아덴이 아닌 테베스로 돌아갔고 테베스는 기원전362년에 지도자를 잃고 헬라는 완전히 몰락되고 말았다. 이때의 사람으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히포크라테스 등이 있다.

5.정복(기원전359-323년)
 동존상잔의 비극속에 헬라 북쪽 마게도냐에서는 마게도냐 주위의 작은 나라를 통일한 필립(기원전359-336년)은 직업 군인을 훈련하여 헬라의 통일을 꿈꾸다가 기원전338년에는 스파르타를 제외한 온 헬라 연맹의 맹주가 된후 기원전336년에 죽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을 받은 그의 아들 알렉산더가 20살에 왕이 되어 테베스를 파멸시키고 22세 때에는 바사에 눌렸던 헬라의 도시들을 해방시켰으며 기원전333년에는 다리오3세를 잇수스에서 타파한 수 다리오의 화평 청원을 거절하고 계속 지중해로 남하하여 수리아와 팔레스타인, 애굽의 항구를 함락한 후 나일의 삼각주에 알렉산드리아를 세웠다. 그리고 다시 북상하여 기름진 새달을 따라 티그리스강을 건너 기원전331년에 바사와 다리오3세의 대군을 알벨라에서 대파하고 바벨론에 입성했다.
 그후 다리오는 기원전330년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고 바사는 알렉산더의 것이 되었다. 이후 알렉산더는 6년 동안(기원전330-324년) 멀리 동쪽으로 옥써스와 작살티즈의 두 강을 지나 남하하여 인더스강을 쳐 인도에 이른 후 해안선을 따라 7년만에 바벨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큰 절정에 이른 알렉산더는 인간성 이상으로 생각하여 진실한 신하의 충언을 무시하고 친구를 살해하는 망동을 저지르다가 기원전323년 6월 33세의 짧은 일기로 바벨론에서 병사했다.

6.분열(기원전323-30년)
 알렉산더의 갑작스런 죽음은 헬라 통일의 좌절과 헬라 자체의 분열을 가져왔고 알렉산더 부하 장군들의 피투쟁(기원전275년) 끝에 유럽의 마게도냐는 안티코너스에게, 아프리카의 애굽은 토레미에게, 옛 바사의 아시아는 셀루커스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셋으로 분할된 후 기원전197-168년에 서쪽 지중해에 일어난 로마에 의해 하나씩 멸망당했는데 기원전 146년 가장 먼저 고린도가 파면되고, 이어 기원전64년 수리아가, 마지막으로 기원전30년 애굽이 로마에 의해 멸망당했다.
 이시대는 헬라어를 공통어로 사용했으며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다인들은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는데 이것을 70인역이라 한다. 그리고 현재 영국 박물관에 보장되어 있는 로제타돌이 이 당시 새겨진 것으로 발견되었는데 이 돌에는 토레미의 한 왕조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상형문자(그림글)와 본래글(보통글)과 헬라글로 되어 있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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